정신과에 가기엔 두려운 당신에게
나 역시 한때 우울증을 겪었습니다. 아무것도 하기 싫고, 이유 없이 눈물이 나고, 살아 있다는 감각조차 흐릿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정신과에 가보라는 말도 들었지만, 선뜻 병원 문을 두드릴 용기가 나지 않았습니다. 뭔가 그 정도는 아닌 것 같고, 정신과라는 이름에서 느껴지는 묘한 거부감 때문에 가기를 꺼려했습니다.
그러나 평생 우울한 채로 살 수는 없었기에, 몇 가지 변화를 시도했습니다. 수 많은 우울증 극복 방법들을 찾아보고, 그 중 효과가 있었던 것들을 추려서 오늘 소개합니다.
1. 산책
우울한 생각이 보통 집에 혼자 있을 때 든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무작정 밖으로 나가 걷기 시작했습니다. 생각이 많고 마음이 복잡할 때 걸으면 도움이 된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입니다. 특별한 목적지는 없었습니다. 단지 ‘생각이 더 이상 나지 않을 때까지’ 걷자는 마음뿐이었습니다. 그렇게 한두 시간씩 걷다 보면, 신기하게도 머릿속이 정리되고 기분도 한결 나아지곤 했습니다.
당시엔 그 이유를 몰랐지만, 나중에 뇌과학 책을 읽고 알게 됐습니다. 인간의 뇌는 원시 시대부터 ‘탐색 본능’이라는 걸 가지고 있습니다. 생존을 위해 새로운 장소를 탐색해야 했고, 그 과정에서 도파민 같은 보상 물질이 분비되도록 진화한 것입니다.
즉, 산책 자체가 뇌에 보상을 주는 활동이었던 겁니다.
꼭 빠르게 달릴 필요도, 운동화를 챙길 필요도 없습니다. 가까운 공원, 동네 골목, 강가를 목적 없이 걷는 것만으로도 우울한 감정은 조금씩 물러날 수 있습니다.
한 가지 추가하자면, 걸으면서 주변의 환경을 있는 그대로 보려고 해 보세요.
2. 찬물 샤워
말만 들어도 고통스러워 보일지 모릅니다. 찬물 샤워라니, 우울한 사람에게 그게 되겠어? 저도 처음에는 도전하기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한 번 용기를 내서, 딱 2분만 찬물을 맞아보았습니다. 그 순간, 몸은 위협을 감지하고 급격히 반응하기 시작했습니다. 심장이 뛰고, 숨이 차고, 정신이 번쩍 듭니다.
신기하게도, 기분이 좋아집니다.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 저는 찬물을 맞곤 합니다. 찬물을 맞다 보면 내가 죽고 싶은 게 아니라는 게 분명해 집니다. 너무나 고통스럽고 빨리 도망치고 싶거든요. 정말 죽고 싶은 것이라면 찬물을 계속 맞아 저체온증으로 죽어도 상관 없을 텐데, 그렇지 않다는 걸 알게 됩니다. 그래서 찬물을 맞으면 나 아직 살고 싶구나 하고 느끼게 되더라고요.
과학적으로 설명하자면, 급격한 온도 변화는 신체에 경고를 보내고, 생존을 위해 ‘기분을 끌어올리는 호르몬’들을 분비하게 합니다. 대표적으로 노르에피네프린, 엔도르핀 등이 나오며, 이는 집중력과 활력을 높여주는 작용을 합니다.
이 글에서 썼던 방법 중에 가장 즉각적인 효과를 주는 방법입니다. 꼭 한 번 해보세요.
3. 글쓰기
우울할 때 머릿속은 늘 시끄럽습니다. 걱정, 자책, 불안, 막막함이 엉켜 있어 어디서부터 풀어야 할지도 모르겠죠. 그럴 때 제가 했던 건 그냥 쓰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지금 왜 이렇게 힘든지’
‘무엇 때문에 이렇게 공허한지’
‘오늘 하루 뭐가 제일 괴로웠는지’
그냥 메모장에 계속 써내려갔습니다. 문장도 엉망이고 주제도 정해지지 않았지만 괜찮았습니다. 글을 쓰다 보면 감정의 흐름이 눈에 보이고, 감정이 정리되기 시작합니다. 내가 감정적이라서 보지 못했던 사실들이 보여 집니다. 그러다 보면 나의 결핍이 무엇이고, 나는 무엇 때문에 우울한지 조금 더 명확해 집니다.
심지어 연구에 따르면, 감정을 글로 표현하는 행위는 뇌의 편도체 활동을 진정시키는 데 효과적이라고 합니다. 감정을 뇌가 ‘객관화’할 수 있게 돕는 것이죠.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글이 아니라, 스스로의 생각을 정리하기 위한 수단으로 글을 써 보세요.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우울증은 약물과 상담 치료로 효과적으로 다스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정신과 문턱을 넘기 힘든 사람들이 많습니다. 저 역시 그랬습니다.
우리 뇌는, 아주 작은 자극에도 반응하고 변화할 수 있는 ‘가소성(plasticity)’을 지녔습니다. 산책, 찬물 샤워, 글쓰기 같은 긍정적인 행동을 하면 뇌는 그에 반응하여 도파민, 세로토닌, 엔도르핀 같은 기분을 조절하는 물질들을 스스로 생성합니다. 우리 뇌가 그렇게 설계되고 진화한 것이기에, 이건 모든 인간에게 보편적으로 적용됩니다.
인터넷의 수 많은 우울증 극복 방법은 대부분 ‘뻔한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저 역시 우울해서 괴로웠던 시기가 있었고, 그 때 실제로 제게 도움이 된 방법들입니다. 이 방법들이 여러분에게도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